
금융권의 경쟁 구도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대마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취약계층과 청년을 끌어안을 수 있느냐가 새로운 승부처가 됐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기조인 ‘포용금융’에 발맞춰 4대 금융지주가 앞다퉈 파격적인 상품을 내놓으면서 대출 시장의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신한은행의 ‘청년 전용 40년 장기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입니다.
국내 시중은행이 30년을 넘어 40년 만기 고정금리를 본격 설계하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초장기 고정금리는 조달비용이 높고, 금리 변동 리스크를 은행이 떠안아야 합니다.
그만큼 대출금리를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2024년 8월 10년 고정형 주담대를 출시했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 부담 탓에 월 판매액이 7억원대에 머문 바 있습니다.
그보다 훨씬 긴 40년 고정금리는 조달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신한은행은 이를 기존 5년 주기형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사실상 예대마진을 일부 포기하겠다는 선택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파급력은 적지 않습니다.
만기가 40년으로 늘어나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낮아집니다.
같은 소득이라도 대출 가능 금액이 늘어날 수 있고, 금리 변동 위험 없이 장기간 상환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특히 청년층에게는 주거 사다리를 다시 놓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신한금융은 이를 일회성 상품이 아니라 그룹 차원의 전략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진옥동 회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생산적 금융 추진위원회’를 통해 총 20조원 규모의 생산적·포용금융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청년·지방 취약계층 지원, 고금리 부담 완화, 보이스피싱·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까지 범위를 넓히겠다는 구상입니다.

KB금융의 접근법은 단계형 구조입니다.
재기 지원, 성장 지원, 자산 형성의 3단계 체계를 통해 취약계층을 장기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입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국민도약대출’입니다.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을 6개월 이상 이용한 차주를 대상으로, 최대 1억원까지 은행 대출로 대환을 지원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직업이나 연소득과 무관하게 접근성을 열어둔 점이 특징입니다.

KB국민은행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운영 중인 채무조정센터도 확대합니다.
신용평점과 여신 현황을 종합 분석해 맞춤 상담을 제공하고, 저신용자 신용카드 발급 지원과 중고차 원금 유예 프로그램 등 실질적인 재기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나금융 역시 청년과 신용회복 대상자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39세 이하 청년 대상 우대금리 새희망홀씨대출, 채무조정 성실상환자 카드 발급, 생계형 중고 화물차 할부 지원 등 계열사별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여기에 개인사업자 고금리 대출 갈아타기, 대출 잔액의 2%를 매달 돌려주는 햇살론 캐시백 프로그램까지 더해 체감 혜택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금융의 선택은 더 직접적입니다.
개인 신용대출 최고 금리를 연 7% 이하로 제한하는 상한제를 도입했습니다.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자동 조정해 7%를 넘지 않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과거 최고 12% 수준까지 적용됐던 금리를 구조적으로 낮추겠다는 신호입니다.

40년 고정금리, 1억원 대환대출, 신용대출 7% 상한.
각각은 별개의 상품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은행이 위험을 더 안고, 금리를 낮추거나 접근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포용금융은 더 이상 선언적 구호가 아니라, 실제 수익 구조를 건드리는 선택이 되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일시적 이벤트에 그칠지, 금융권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대출 시장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저신용자, 고금리 차주라면 지금이 구조 변화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앞으로 어떤 조건이 열리고, 어떤 문이 닫힐지에 따라 개인의 금융 전략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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